181226 VOICE Newtype no.070
야시로 타쿠 ● 1월 6일생 / 이와테현 출신 / 빔스 소속 / 주된 주연작은, '천총사'(브라운 베스), '아이돌 마스터 sideM'(카시와기 츠바사), '도메스틱한 그녀'(후지이 나츠오),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타니구치 마사키) 등.
Interview
八代 拓 야시로 타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쌓아온 매일매일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순수히, 담담하게, 그래도 내일을 향해 분발한다. 오히려 그 '젊은' 서투름을 무기로, 때로는 캐릭터의 마음과 충돌하면서,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해가는 성우 '야시로 타쿠'. 언젠가의 졸업 앨범처럼, 솔직한 마음을 '지금'에 새겼다.
-처음 본지에 등장하셨던 때가, 2015년 6월 발매했던 'no.055' 아이돌 마스터 sideM의 Dramatic Stars 멤버로서였습니다.
-그립네요. 취재 같은 것 자체가 처음인 날이어서, 그 날 입었던 옷을 샀던 가게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표지에 실리게 됐다니 정말 꿈만 같네요. 절대 저 혼자 걸어온 길이 아니니, 힘을 보태주신 분들, 응원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라비아 촬영은 익숙해지셨나요?
-조금씩이지만 의상이나 시츄에이션을 의식해 표정을 짓거나, 연기를 하고 있는 감각이랑도 비슷해져서,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오히려 프라이빗하게 핸드폰(카메라)에 향해지는 쪽을 더 긴장해버리네요. 거기에 찍히는 건 틀림없는 저 자신이니까.
-이번 촬영의 시츄에이션으로 '학교'를 희망하신 이유는?
-학교의 분위기를 좋아해요. 재학했던 당시엔 생각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로 가득 차있던 장소였어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지금, 25세인데, 아직 학생 때 기억이 선명해요. 앞으로 나이를 먹어 가도,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질 것 같고, 기분적으로도 무리 없이 학생 시츄에이션으로 찍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시점인가 같은걸 생각했습니다.(웃음)
-야시로 씨의 청춘 시대는, 한 마디로 어떤 것이었나요?
-한 마디로라면......어쨌든 라켓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웃음) 공부보다, 부활동으로 배드민턴에 대한 걸 생각하는 시간 쪽이 길었어요. 그리고, 역시 인간관계로 고민하거나,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같은걸 찾고 싶어지는 감수성 예민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마음도 몸도 자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Taku Yashiro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로
가득 차있던 장소
-'나도 어렸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중학생때 저는 어느 쪽이냐 하면 약간 독선적이어서, 상대가 누구든 생각한 걸 서슴없이 말해버리는 타입이었어요. 게다가 말하는 방법도 미숙했으니까, 반 안에서 좀 거북하게 여겨져서. 지금이라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까?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지만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역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추억은?
-아아니, 뭐든지 다 미숙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눈 결정 목걸이를 선물했던 적이 있습니다. 케이크를 살 수 없으니까, 밀폐용기에 딸기를 넣어서 건네준다던가.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 와선 좋은 추억입니다.(웃음)
-아이 시절에는, 뭐가 되고 싶었나요?
-초등학생 때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서 같은 좌타자(*왼손잡이)란 이유로 자주 이치로 선수와 타카하시 요시노부 선수의 흉내를 내곤 했어요. 그치만 5학년 때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서 '이젠 될 수 없겠네' 라고 생각해버렸네요. 별로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요. 딱 그때 즈음에 만화에 푹 빠지기 시작해서, 6학년 때 졸업앨범에 쓴 장래희망은 '만화카페를 연다' 입니다. 웃기지요. 그땐 아직 만화카페에 가본 적도 없었는데.
-‘만화가’가 아니었던 거군요(웃음) 중학교 때는?
-좀 꼬여 있었죠. 아까 살짝 언급했지만 반 안에서 충돌이 있어서, 사람을 믿지 못하는 모드로 들어가 버렸어요, 나는, 사람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없구나, 하고. 당연히 장래의 꿈같은 건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중학교 졸업 앨범에는 처음엔 '뭐뭐 고등학교에 간다' 라고 썼어요. 어쩜 귀여운 구석도 없이... 말하는 것만으로도 소름돋네요.(웃음) 선생님께서도 '그러는 거 아니야' 하셔서, 결국 부모님의 직업으로 고쳐 썼습니다.
-그런 야시로 소년이 고등학교에서 되찾은 꿈이 '성우' 였던 거네요.
-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공부를 잘하진 않았어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의 이름이 게시된 걸 보면서, 나도 어딘가에서 성공해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때에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더니 엔딩 크레딧에 성우분들의 이름이 올라가서 '이거다!' 했죠. 이상한 계기일지도 모르지만 '되고 싶다' 는 생각이 드는 걸 찾아낸건, 저 자신도 행복했어요, 부모님께 상경하는 걸 허락받기 위해 교직이수를 할 수 있는 대학을 고르기도 하고, 그 때의 열의는 대단했습니다.
-꿈을 이루고, 지금은 성우로서 '학생'을 연기하는 일도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런 학교생활 좋겠네' 하고 느끼는 건, 실제로 본인이 어떤 학생 시절을 보냈는가와는 별개로, 누구나 마음속에 가진 반짝반짝한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자기 자신을 돌아봐도 학생 시절이란 건 지식도 경험도 부족하고, 그래도 그때만의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고. 리액션 하나만 해도 어른하고 차이가 있어서 감각적으로도 의도적으로도 '신선함'을 중요하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라곤 해도, 저는 메인 캐릭터 역으론 그다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학생다운 학생 역을 하지 않았지만요.(웃음)
-그렇게 생각해보면, 주인공인 후지이 나츠오를 연기하는 '도메스틱한 그녀'는, 대망의 학원물이네요.
-그렇다니까요. 주위에서 일어나는 건 터무니없는 상황이지만, 나츠오 자신이 대단히 평범한 고등학생이어서, 마음의 동요가 정말 심해요. 자신이라는 것이 확립되지 않은 나이의 흔들리는 생각을 연기할 수 있어서, 녹음이 즐겁습니다.
-데뷔로부터 5년이 되었습니다만, 자신의 성장을 느끼는 일은 있나요?
-일을 받았을 때, 생각할 수 있는게 늘어났을까 라고는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도, 그냥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대본을 읽고 '이건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 가고 싶은 작품이려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 같은 것을 찾아가면, 어떤 캐릭터에게도 반드시 어떠한 역할이 있어서, 쓸모없는 대사같은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게 돼요. 라디오도 어디에 비중을 둘 것인가로 방송이 전혀 달라져요. 물론 처음에 생각한 것과 다른 경우도 있지만, 막연히 받아들이던 때와 비교하면 제 자신도 변했습니다.
-필드를 넘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던져진 공을 반드시 되받아치는 기개가 느껴지네요.
-'성우가 이런 것도 해?!' 하는 일은 많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공부에 있어서든, 스포츠에 있어서든, 감을 잡는다는 게 있잖아요. 처음부터 아는 경우가 있으면,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요령이 좋지 않으니까, 압도적으로 후자의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일도 처음부터 '이건 무리겠지’'라든가, 스스로 단정짓지 않도록 하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제가 뭘 하고 재미있다 어떻다 하는 건, 받아들여주시는 분들이 판단하실 일이고 말이죠,
Taku Yashiro
뭐든지 처음부터 무리라고 단정짓지 않는 소중함
-본인의 도전으로 누군가 즐거워해주는 것도 모티베이션이 되고 있는 거네요,
-오히려, 그게 전부예요. 저는, 아마도......원래 다른 사람하고 어울리고(관계하고) 싶은 인간입니다. 어떤 일이라도 '사람'과의 일이고, 그야말로 연기하는 캐릭터도 '사람'이고, 즐거워해주시는 것도 '사람'이에요. 그런 관계성으로 되어 있는 고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라디오도 이벤트도 물론 애니메이션도 전달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고, 즐겁게 할 수 없다면 가치가 없으니까. 이건, 어떤 이벤트가 교훈으로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벤트였나요?
-자주 말하지만요, 캬라호비2015(*이벤트명)에 아이돌 마스터 sideM으로 나왔을 때의 일이에요. 눈앞에는, 처음부터 이 작품을 목적으로 와주신 분들이 계시고, 그치만 조금 뒤에는 정말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멋진 작품인데도 '전달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 이렇게 슬픈 일이구나 그 때 통감했습니다.
-다같이 열심히 만들어낸 것을 전달하기 위한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원점에 있는 거군요.
-네. 어떤 작품이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경험치를 올려가고 싶은 일이라는 건, 역시 '연기' 인가요?
-그건 절대 흔들리지 않지요. 가장 긴장되고, 가장 괴롭고, 가장 즐거워요. 어떤 감정도 '가장'은 거기에 있습니다. 다만 생각이 좀 바뀐 부분도 있어서. 전에는 '이벤트나 버라이어티같은 일'도 '성우로 연기하는 일'로 환원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에 사로잡혀 있었고, 물론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최근에는 양쪽 다 병행해서 잘 해내야겠지 하고 생각해요. 무리해서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 차려 보니 연결되어 있었다......정도가 이상일지도 모르겠네요. 둘 다 훌륭한, 저에게 있어 소중한 일이니까요.
-애니메이션의 오디션에 임하는 방향에 색다른 부분은 있나요?
-으~음. 이렇다 할 비책이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음향 감독님과 대화하는 중에 느끼게 된 건 '역시, 이렇게 왔나' 로는, 귓가에 머물지 못한다는 거. 그걸로 합격된다면, 연기가 아니라 원래 목소리 톤만의 이야기가 되니까요. 그렇지만, 처음부터 정 가운데를 겨냥하고 그렇게 노릴 정도로 감각이 뛰어난 인간도 아니고. 아마도, 오디션이란건 '이 캐릭터를, 이 사람이 하는 의미' 같은 걸 묻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거기서 요구하는 연기자가 되어가지 않으면 안돼요. 배역이 결정된 순간의 흥분이란건 데뷔하고 몇 년이 지났어도 특별하네요,
-반대로, 떨어졌을 때의 회복 방법은?
-떨어지는 게 일상이라서, '다음에야말로 힘내자!' 라고 생각하는 일도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했어요.(웃음) 최근엔 어느쪽인가 하면 철저하게 이유를 생각해요. '이렇게 하면 좋았으려나' '아니, 이렇게인가?' 하면서. 그러고 정답 맞추기 같은 거창한 일은 아닙니다만, 온에어(방송)를 보면서 '과연 그렇군' 하고.(웃음)
-지난 호 'No.069'에서 말씀 여쭈었을 때 '최근, 다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즐거워졌다' 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런 식으로(정답 맞추기) 보시게 되는 것도 있는 거네요.
-전에는, 꼭 '이까짓 것' 하는 기분 위주라서, 다른 사람이 연기하고 있는 부분까지 파고 들어가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까의 이야기는 아닌데요, 이거저거 생각하게 돼서.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알아가는 중에, 조금씩 담을 수 있는 그릇도 커지게 됐고, 어딘가 양성소(성우학원) 시절의 감각으로 돌아간 경향도 있어요. 라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분한 기분 쪽이 물론 큽니다. 운동부 출신이고, 지기 싫어해요.
-같은 세대 성우 동료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가장 알기 쉬운 자극을 주는 존재예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본인이 부족한 것처럼 보여요. 그렇지만, 이야기를 해 보면 '이걸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런 걸 생각하는구나' 하고 고민을 공유할 수 있고 그렇습니다. 역시, 스스럼없이 일적인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동세대 사람들 뿐이에요. 싫어도 주목하게 돼서, 신경 쓰이는 일이 쌓이고 쌓이면,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고 있어?' 하고 뜬금 물어보거나 해요.(웃음)
-요 1년도 많은 작품에 출연하셨네요. 다시금, 어떤 한 해였나요?
-충실한 한 해였구나~ 생각해요. 어쩌면 데뷔 5년차에, 또 이런저런 새로운 일이 시작돼서 초심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어요.
-'건담 빌드 파이터즈' 의 시바 츠카사는 악역이었네요.
-그렇게까지 완전 악역인 캐릭터는 처음이었다고 생각해요. 절대로 애니메이션에서밖에 쓰지 않는 대사도 많이 말하게 하는 캐릭터라서, 악역을 연기하는 재미를 알려줬습니다. 그에게도 본인의 정의가 있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남자였네요. 저도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주인공과 적대하는 캐릭터는 굉장히 기억에 남아 있고, 그걸로 이야기를 보는 쪽도 변해가기 때문에, 압박을 느꼈지만 정말 하는 보람이 있는 포지션입니다.
-'천총사'에서는, 주인공인 브라운 베스를 연기하셨습니다.
-제가 제일 후배고, 많은 선배님들이 계셨던 작품이었어서, 매 에피소드마다, 녹음이 즐거웠습니다.(강심장...) 역할적으로도, 브라운 베스가 브라운 베스로서 살아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주변이 움직여주는 면이 있어서, 다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시는 분위기하고도 겹쳐지는 게 있었네요. 멋지고, 뜨겁고, 정의감이 넘쳐흐르지만, 전부 짊어지고 있는가 하면, 아직 거기엔 도달해있지 않은 성장 도중인 모습은 굉장히 의식해서 연기했습니다.
-성우로서, 본인만의 '품격(気高さ케다카사)'을 알려주고 싶은 작품이지 않았을까요. (*천총사 내용과 관련. 캐릭터들의 품격, 고귀 등이 중요 소재)
-그러네요. 성우에게 있어서 제일인 전쟁터는 녹음 현장이라서, 마이크 앞에서 캐릭터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고, 앞으로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생각하는 것이, 저의 '절대고귀'입니다.(*천총사 소재 단어) 게다가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연기를 하는 선배님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 하고 생각하게 돼요.
-그런 '기사도'가 아닌 '성우도'를 재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고.
-아니, 뭔가......부끄럽네요. 올해는 '유☆희☆왕 VRAINS'에서도 카지(유우키) 씨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파트너 역에 뽑힌 일도 커서, 정말 배우는 게 많았어요. 질문하면 상냥하게 대답해주시는데, 옆에서 연기를 듣게 해주시는 것만 해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컵라면 광고 '아오하루 편'에 출연하신 일도 중대 토픽이었네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고향집에 있었을 때, 아버지가 신문을 읽으시면서 '올해도 컵라면인가' 같은 말을 하셨던 걸 굉장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매년 광고 대상(大賞)이 발표되어 있고, 컵라면이 그 상을 연속 수상했던 모양이라. 그런 광고에 제가 성우로서 출연하게 됐다니, 처음 매니저로부터 들었을 땐 큰 소리로 기뻐했어요. 상대 배역분과 합 맞추는 것도 즐거워서, 인상 깊은 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라고 하면, 동경하는 남성상이라고 말씀하셨던 일이 있습니다.
-동경한다고 해야하나, 존경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시간에 아침 신문을 읽고 식사를 하시고, 같은 시간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가시고. 자가용도 있는데 아마도 환경을 위해, 집에서 꽤 먼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세요. 정말 성실하고 정직하신 분이어서, 어떻게 이런 아버지한테서 내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웃음)
-트위터에서 가족과 식사를 하신 이야기를 하셨었네요.
-아버지와 출장으로 도쿄에 오시게 되면, 대부분 어머니도 함께 오시고 누나랑 저랑 4명이 모여 식사를 해요. 어머니가 스마트폰을 사셨다든가, 누나가 이사했다든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족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리셋된다고나 할까.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열심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어머니껜 조금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부끄럽지 않도록' 하고, 어린 시절부터 요리를 전수해주신 덕에 대학생일 때는 나름 자취생활을 잘 했는데, 점점 하지 않게 되었어요. 최근, 방송에서 요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닥 잘하지 못해서 죄송했었습니다.(웃음) 전에는 누나랑 살았는데요. 혼자 살게 된 후로부턴 아르바이트의 식비로 생활했고, 생각해보면, 한번도 밥솥을 산 적이 없어요...... 지금은. 대부분 외식합니다만, 밥 정도는 짓지 않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올해, 그야말로 야시로 씨에게는 엄하고도 따뜻한 집같은 장소였던 bayfm 방송 'MOZAIKU NIGHT'를 졸업하셨습니다.
-한 주에 이거 하나밖에 일이 없을 때부터 3년 반 해오면서, 깊이 생각하기도 했고, 계속 하고 싶다는 기분도 강하게 들었지만, 조금씩 스케줄에 무리가 오기 시작해서요. '나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뭘까' 하고 생각했는데, 어딘가에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됐었어요.
-그리고, 설마 하던 다른 방송 'ON8+1' 퍼스널리티를 맡게 되셨네요.
-이미 bayfm 측과는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했었기 때문에, 다른 시간대의 방송을 담당하게 해 주실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혼자 말하는 일이라 (대화)상대방이 있었던 'MOZAIKU NIGHT'랑은 여러 가지로 다르기도 하고, 또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해 주셨네요. 저는, 이렇게나 라디오를 진행해 오면서도, 변함 없이 말이 능숙하지 않고, 메일(사연)이나 트위터의 반응이 없었다면 이야기가 한순간에 끝나버려요. 구린 표현이 되겠지만, 청취자 분들과 같은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해서, 역시 생방송은 그만둘 수 없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유명 여성 캐릭터에게 구애하는(*口説く) 코너도 있었는데요,
-뭔가 '성우'가 방송을 하고 있는 의미가 있는 코너가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제안했는데요. 단지 그것뿐이라면 청취자 분들께 받은 대사를 말하는 것뿐이어도 괜찮았어요. 그치만, 혼신의 힘을 다해 구애하고, 기본적으로는 차인다는 것에, 저다움이 있지 않을까 해서.(웃음) 전에 신세를 졌던 분께 '야시로는, 아무리 멋있는 척 해도 근본적으로 바람잡이 캐릭터니까(*三枚目산마이메)' 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납득했습니다.(웃음)
Taku Yashiro
성실하고 정직하게, 한 발씩
감사를 잊지 않고 싶다
-성우가 되어서 다행이다 생각하셨던 일이 있었나요?
-구체적으로 이거다 짚는 건 어려운데요, 악역도 그렇고, 역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때마다 생각합니다. 더 말하자면 팬레터를 받거나, 이벤트에 와주신 분들이 즐거워하시는 걸 보면 역시 행복해요.
-본지의 웹사이트 'KIKI'에서 이치카와 타이치 씨와 둘이서 연재한 '이치카 바치카!(市か八か)'에서의 버스 투어도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고, 제 2탄 개최가 결정되었네요.
(*'一か八か이치카바치카(죽는냐 사느냐)'의 일본어 관용구에서 이치카와市川의 市와 一을 '이치'로 똑같이 읽고, 야시로八代의 야(八)는 관용구 표현과 한자가 八로 똑같은 걸 활용한 말장난...을 겸한 제목인 것 같음.)
-이전 회차가 정말 재미있었고, 우리들만 재미있어하면 안돼, 하고 잇치(*이치카와 타이치)랑 얘기했는데요. 제 2탄을 하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같이 여행하는 기분으로 어딘가에 가는게 즐겁고, 똑같이 즐거운 기분의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한 공간이 되겠구나 해서요. 여러분이 더욱 만끽하실 수 있도록, 스탭분들과 이것저것 상담하고 있습니다.
-몇 개정도, 퍼스널한 질문을 하게 해 주세요. (컨셉 사진이)학교인걸 기념해서, 최근 뭔가 '배웠다' 하는 게 있나요?
-배운 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뭐든지 도전해보자 하는 스탠스로 일을 하고 있는 주제에, 프라이빗하게는 안정을 추구하는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식사도 거의 정해진 가게에서 먹고, 집에서 좋아하는 게임을 계속 하고 있고. 절대로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해 주는 흥미로운 일에만 손이 가요. 그래서는, 마음도 움직이지 않고, 세계가 넓어지지 않아요. 라디오에서 떠들거나, 캐릭터의 심정을 상상할 때에, 다른 사람보다 끌어내는 것이 많이 부족하다는 건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원인은 이게 아닐까 해서. 행동하기 위해서, 메모장에 '반드시, 모르는 가게에 간다'라고 적었어요. 가능한 한 하루에 한 번 한 적 없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도 생각합니다.
-쉬는 날에는 뭘 하며 보내나요?
-감사하게도, 지금은 하루 종일 쉬는 날이 잘 없어서, 녹음 전후로 몸을 움직여 리프레쉬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아침이라면 배드민턴, 밤에는 풋살이에요. 집에서 영상을 보며 지내는 것도 즐겁지만, 무언가를 얻는 실감이 있는 편이 기분도 건강하게 유지된다고나 할까. 스포츠는,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거나, 좋은 플레이를 했구나 하는 반응이 있거나 하니까요.
-그럼, 일주일간 휴가가 있다면 뭘 하실래요?
-친구랑 여행을 갈 거예요. 대학생일 때 같은 학부에 사이가 좋았던 친구가 둘 있어서,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직까지 교류가 이어지고 있어요. 같은 업계 사람과라면, 프라이빗하게 놀고 있어도 1%정도 비즈니스 모드가 남아버리니까, 굉장히 귀중한 존재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힐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옛날부터,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하고 있는 것 같은 동물이나 자연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방송을 멍하니 보는 걸 좋아해요. 태고의 공룡 이야기에는 로망을 느낍니다. 그런 방송의 나레이션이라는건, 좀 담백해서, 기분이 좋지요. 가끔 혼자서 흉내를 내며 보기도 해요.(웃음) 또, 타올의 옷감에도 힐링된다고 느껴요!
-매일의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순간은?
-좋아하는 게임 실황자 분들의 영상을 보는 시간. 그 분의 게임 실황은 언제나 장시간 생방송이에요. 그래서, 가끔 운 좋게 하고 있으면 문답무용으로 보게 돼요. 일도 뭐도 잊어버리고, 몰두하게 해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단연코 벌입니다. 모습을 본 것만으로 몸이 굳고, 심장이 쿵쾅 뛰어요.
-좋아하는 구절은?
-계속 바뀌지 않았는데요, 아이다 미츠오(相田みつを) 씨의 구절로, '좋은 일은, 덕분에. 나쁜 일은, 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원래도 어머니로부터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요령이 좋지 않으니까, 주변 사람에게 감사하며, 계단을 한 발씩 걸어 올라가렴'라는 말을 듣고 있었어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에 탈 수 없다면, 적어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있어라, 라고. 깨닫고 보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 같은 인생입니다만, 감사의 마음만은 잊은 채 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촬영 후에, 지금의 야시로 씨가 학생이었던 시절처럼 '장래의 꿈'을 적는다고 한다면?
-'평생성우(一生声優일생성우)'. 라고 하는건 간단하지만, 지금의 저인 채로는 5년 후도 위태위태하네요. 그렇지만, 만약, 30세가 되었을 때, 혹은 그 후 계속 성우를 하고 있다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포함해서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단 뜻이니까, 제대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면 좋겠구나 생각합니다. 좀 더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높이고, 높여 가서, 평생(일생) 계속할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SPECIAL CROSS TALK
TAKU YASHIRO X SHOTARO MORIKUBO
Pay it forward
八代 拓 X 森久保祥太郎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는 마음
용맹하고 과감한 톱 러너. 모리쿠보 쇼타로를 쫓아가는 야시로 타쿠는, 그 등에서 무엇을 본 것인가? 새로운 스테이지로 향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단단하게 맺어진다.
-이번 회의 대담은 야시로 씨의 러브콜을 실현해버렸는데, 야시로 씨에게 있어 모리쿠보 씨는?
야시로 사무소에 들어가 첫 신년회에서 자기소개를 했을 때, 아무 임팩트도 남기지 못했다는 후회가 있습니다.(웃음) 그래서 어떻게인가 모리쿠보 씨가 ‘이 자식, 좀 재밌네’ 하고 생각하는 후배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처음 같이 일을 하게 되었던 ‘오토메디아 채널’의 수록에도 임했습니다.
모리쿠보 야시로하고, 아마쨩(아마사키 코우헤이), 우메쨩(우메하라 유이치로)이라고 하는, 지금 와서 보면 굉장한 3명이 퍼스널리티였지만, 이게 범골(*원문:ポンコツ) 세 분이라서요.(웃음)
야시로 모리쿠보 씨가 반성회에서 말해주셨던 ‘성우니까, 대본만은 제대로 읽자’ 라는 말이 잊혀지질 않아요. 어쩌지도 못하고 긴장하고 있는 저희들을 받아들여주시고, 안심할 수 있는 말만 해주셨어요.
모리쿠보 그렇지만, 다들 금방 꽃피웠잖아. 우메쨩이 처음으로 여물어 터진건 예상외였지만, 거기서부터 야시로가 눈에 띄어 공회전하기 시작해서, 아마쨩도 독자적인 방향으로 뚫고 나가고, 점점 와각거리게 되는게 재미있었지. 그러는 와중에, 야시로는 bayfm의 'MOZAIKU NIGHT'가 (출연이)결정돼서 말이야.
야시로 네.
모리쿠보 'MOZAIKU NIGHT'는 내가 26, 7살 때 처음으로 맡게 되었던 생방송 FM 프로그램이야. 매주, 아침 5시까지 방송하고, 6시까지 반성회. 그런 엄격한 디렉터 분이었어, 하니까, 야시로는 아니나 다를까, 정면으로 받아들였지.
야시로 단련받았네요......그게 시작되고 나서, 어느 때인가 모리쿠보 씨가 '뭔가 변했네' 라고 말씀해주셨잖아요. 저 자신은 정말 있는 힘껏 하느라, 그 당시엔 뭔가 성장해 있다는 실감도 없었고 '잘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어요.
모리쿠보 응. 눈 속에 불꽃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어서, 뭔가 잡았구나 생각했어. 야시로는 근본적으로 상냥하고 진지하니까, 테두리의 바깥에서 헤매고 있었다고 생각해. 믿어주지 않겠지만, 나도 그랬었으니까.
야시로 엥, 정말이에요?
모리쿠보 20대 시절에 이시카와 히데오 씨랑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약간의 야한 농담도 잘 받아칠 수 없을 정도로 서툴러서. 그래서 내 밴드 라이브에 히데 씨랑 디렉터를 초대했더니, 스테이지에서 내가 톡톡 튀는 모습을 보고 '너, 왜 그걸 라디오에서 안하는 거야?' 라고 하셔서. 그게 도움이 되었어요. 뭔가 하나, 자신감을 갖는 순간부터 사람은 매력이 늘어나. 야시로한테 있어선, 그게 심야의 라디오였다고 생각해. 덤비고, 덤벼서, 극복한 만큼, 그게 자신감이 되어가니까.
야시로 모리쿠보 씨가 bayfm의 간판 방송인 ‘POWER COUNTDOWN’의 대타를 저한테 맡겨주셨을 때도, 정말 '인정받았다' 라고까진 말할 수 없지만, 모리쿠보 씨의 안에서 제 존재가 무언가의 인상으로 남아있구나 생각했던 일이 정말 기뻤어요. '언제나, 이런 느낌으로 하고 있어' 라며 빌려주셨던, 모리쿠보 씨가 잘 메모해두신 대본도 오늘 가지고 왔습니다.
모리쿠보 에엥?! 진짜네. FM은, 본인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의 귀를 얼마나 즐겁게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니까, 미리 준비하는 게 필요하지. 아~ 그립다. 떠올랐어, 그 긴장되는 매일매일이......위가 아파졌다고.(웃음)
-야시로 씨가 3년 반 계속한 'MOZAIKU NIGHT'의 졸업에 대해선, 모리쿠보 씨도 상담 요청을 받으셨나요?
모리쿠보 그러네요. 저로서도, 방송직후에도 하루 종일, 일하는 날도 있다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신경이 쓰였어요. 센스 있는 조언이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또 bayfm에서 새로운 방송을 시작한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런, 또 조금 다른 각도로 세상 속에 표현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적어도 저에게는 플러스가 됐으니까요.
-올해, 모리쿠보 씨는 VIMS(소속사명)를 퇴사해, 개인 사무소 '애드나인즈'를 설립하셨습니다.
모리쿠보 VIMS는, 원래 저 혼자만 소속해 있는 사무소였어요, 어느 해부터 후배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후배들이 각자 활약할 수 있기까지 나도 힘내자, 하는 기분으로 계속 해왔고, 이제야, 그 때가 왔구나 하고 생각했네요.
-퇴사하는 걸 후배 분들께 어떻게 전달하셨나요?
모리쿠보 사실은 전원에게 제 입으로 직접 말하고 싶었습니다만, 이런저런 일이 겹쳐서,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모든 후배에게 메일을 썼습니다. 아까 말한 것 같은거랑...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했을 때 이 너무너무 안락한 사무소에 이대로 계속 있는 것만으론 안되겠구나 생각했던 것도. 다만, 서면으로만 전달하면 이상한 오해를 줄지도 모르니까, 야시로가 증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야시로 '내일, 이벤트 후에 뭐 일정 있어? 술 한잔 할래?'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보통은 전날 확인같은거 안하시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치만, 뇌가 생각하는 걸 거부했네요.
모리쿠보 '퇴사합니다' 라고 말한 순간에도, 멈칫, 하고 굳었었지.(웃음) 그래서 퇴사를 발표한 후에 혹시 불안해하는 녀석이 있으면, 내 기분을 전달해줘 부탁했어요. 발표할 때까지 2주 정도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건 괴로웠겠지만, 이 귀찮은 역할을 누구에게 맡기는가 하면, 역시 야시로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야시로 영광이었습니다. 모리쿠보 씨는, 퇴사하실 때 VIMS의 후배 모두에게 'Pay it forward' 라는 말이 들어간 머그컵을 주셨어요. 중요한 건 '받은 것을 그 다음에게' 라고. 지금은 저희들의 슬로건 비슷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리쿠보 나 자신도, 오른쪽 왼쪽도 모르고 이 세계에 들어왔고, 선배님들이 예뻐해 주셔서 지금이 있으니까 말야. 그야말로, 올해 돌아가신 츠지타니 코우지 씨는......그 분도 극단에서 들어온 분이셔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의미로 나한테 뭔가를 느끼셨지 않았나 싶어. 그런 선배님이 잔뜩 계셔서, 많은 걸 받았지만, 저는 긴 시간동안 후배가 없었지요. 그래서, 저 자신이 어딘가에서 원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받은 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굶주려 있었어요. 거기에 야시로와 후배들이 와 준거죠, 선배님들로부터 받은 것을 넘겨주고 20년 가까이 된 어깨의 짐을 내려놓았을 때, 홀연, 시야가 넓어져서요. 그것도 있고, 자기 자신의 도전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감사의 마음입니다.
야시로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제 인생 전부를 써도 모리쿠보 씨에게 받은 은혜를 갚는 건 불가능하니까, 아래로(후배에게) 전달해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런 내가’ 라고 말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하고.
모리쿠보 고마워. 그 기분은 마음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어줬음 좋겠다고 생각해. 그치만, 아직 괜찮지 않아?
야시로 네?
모리쿠보 반대로 말하면, 나를 위해 힘을 100% 발휘하는 시기도 꼭 올테니까. 앞으로 5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정신없이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나 20대 때는, 내 자신이 강해지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웃음) 30대 때 선배님들의 감사함을 깨닫고, 40대를 바라보고서야 되돌려주자는 걸 생각했다고나 할까. 게다가 30대를 넘긴다고 해도, 절대로 아래(후배들)로 전달하는 편이 좋다곤 말 안해. 그 때에, 야시로가 솔직하게 생각한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해.
야시로 하--. 그런가...... 항상 생각합니다만, 이런 저런 어드바이스를 주시는데도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바로 버리고, 새로운 걸 해도 괜찮으니까' 라고 말해주시는 점도 굉장해요.
모리쿠보 시대도 환경도 다르면, 내가 말한게 고리타분해지는 건 당연한걸. 거기에, 지금의 감각을 추가로 넣어줬으면 한다고 생각해.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대담하셔서, 어떠셨나요?
모리쿠보 민낯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네요.(웃음) 덕분에 'Pay it forward'라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는 활동을 해 오고, 지금의 저는 '아직,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라고 하는, 그야말로 VIMS에 소속해 있었던 27세 때의 기분이에요.
야시로 굉장해요, 정말로! 저는, 아직 연기로는 모리쿠보 씨와 실컷 부딪쳐본 일이 없어서, 그게 지금의 목표 중 한가지이기도 해요.
모리쿠보 그러고 싶네. 그치만, 그러기 위해 나도 야시로나 다른 후배들 세대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음 안돼. 그러니까 힘냅시다, 서로!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PASH! 19년 6월호 고2조 성우 좌담회 (0) | 2019.05.29 |
---|---|
spoon 2Di vol.48 야시로 타쿠&타케우치 슌스케 인터뷰 (0) | 2019.05.18 |
spoon 2Di vol.48 Special short story Kakeru&Alexander - Not bud (0) | 2019.04.19 |
spoon 2Di vol.46 하타나카 타스쿠 인터뷰 (0) | 2019.04.09 |
spoon 2Di vol.46 COVER SPECIAL SHORT STORY - 旧正月(설날) - 유키&타이가&카케루 with 팬더쨩 (0) | 2019.04.07 |